치매 진단받은 어머니 통장, 자식인 제가 못 건드렸습니다 — 성년후견까지 4개월
입력 2026.06.15
요양원 입소비를 내려고 어머니 통장에서 돈을 찾으러 갔습니다. 평생 어머니가 쓰시던 그 통장, 비밀번호도 알고 있었고, 저는 외아들입니다. 그런데 창구 직원이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어머님 본인 맞으세요? 직접 오실 수 있으실까요?"
어머니는 두 달 전 중증 치매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그 얘기를 꺼내자 직원의 표정이 바뀌었습니다. "죄송하지만, 본인 의사 확인이 안 되면 가족분이라도 출금을 도와드릴 수가 없어요." 통장도 도장도 비밀번호도 다 있는데, 어머니 돈을 어머니 요양비로 쓰는 것조차 막힌 겁니다. 그날 처음 '치매머니'라는 말을, 그리고 성년후견이라는 제도를 알게 됐습니다.
오늘은 제가 그 4개월을 통과하면서 알게 된 것들을 그대로 적습니다. 부모님이 아직 건강하셔도, 이 글은 미리 읽어두시길 권합니다.
왜 자식인데도 부모 통장이 막히나
은행이 야박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예금 거래는 '본인의 의사능력'을 전제로 합니다. 치매로 의사능력이 없다고 판단되면, 은행은 본인 확인이 안 되는 거래를 막습니다. 이건 거꾸로 보면 치매에 걸린 부모의 재산을 자식이 함부로 못 빼가게 보호하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그 보호막이 정작 요양비·병원비처럼 부모를 위해 꼭 써야 할 돈까지 묶어버린다는 점입니다. 흔히 "위임장 쓰면 되지 않냐" 하시는데, 위임도 본인이 의사능력이 있을 때만 유효합니다. 이미 중증 치매라면 위임장도, 가족이라는 사실도 법적 권한이 되지 못합니다. 합법적으로 부모 재산을 관리할 유일한 길이 법원을 통한 후견이었습니다.
후견에도 종류가 있습니다 (이걸 몰라 한 번 헤맸어요)
저는 막연히 "성년후견 하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상태에 따라 종류가 나뉘었습니다.
한정후견 — 능력이 부분적으로 부족한 경우. 정해진 범위만 후견인이 보조.
특정후견 — 특정한 일(예: 예금 인출, 부동산 처분) 하나를 위해 한시적으로.
임의후견 — 본인이 건강할 때 미리 후견인을 정해두는 계약(공증 필요).
어머니는 중증이라 성년후견으로 갔지만, 만약 초기였다면 한정·특정후견이 더 맞았을 수 있습니다. 어떤 유형으로 갈지는 진단서와 상태에 따라 달라지니, 시작 전에 따져봐야 합니다.
신청 절차 — 제가 실제로 밟은 순서
- 신청 자격 확인: 본인·배우자·4촌 이내 친족·검사·지자체장이 청구 가능. 저(자녀)는 해당됩니다.
- 관할 법원: 부모님(피후견인) 주소지 관할 가정법원에 '성년후견 개시 심판' 청구.
- 서류: 청구서 + 정신장애 진단서 + 가족관계증명서 + 주민등록등본 등.
- 정신감정: 법원이 의사 감정을 받게 하는 게 원칙이지만, 대형병원 진단서·진료기록으로 소명되면 감정을 생략하기도 합니다(시간·비용 절약).
- 심판·결정: 신청부터 결정까지 보통 수개월(저는 약 4개월)이 걸렸습니다.
비용은 얼마나 들었나
법원에 내는 인지대·송달료 자체는 소액입니다. 부담은 다른 데 있었습니다. 정신감정이 필요한 경우의 감정비, 그리고 절차가 복잡해 변호사를 선임할 경우의 수임료입니다. 이건 사건·법원·병원·법무법인에 따라 편차가 크기 때문에, 금액을 단정해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다만 진단서로 감정을 대체하고 직접 진행하면 비용을 꽤 줄일 수 있었습니다. (자력이 부족하면 법원에 소송구조로 비용 일부 지원을 신청할 수도 있습니다.)
가장 후회되는 것 — 건강하실 때 미리 했더라면
이 모든 과정에서 가장 아쉬웠던 건, 어머니가 정신이 또렷하실 때 아무 준비도 안 해둔 것이었습니다. 부모님이 건강하신 지금이라면 선택지가 더 있습니다.
- 임의후견(후견계약): 본인이 신뢰하는 사람을 미리 후견인으로 정해 공증해두면, 나중에 판단능력이 떨어졌을 때 법원 절차가 한결 수월합니다.
- 치매·재산 신탁: 본인이 생전에 금융사와 신탁계약을 맺어 재산 관리·승계를 정해두는 방법. 상품·조건이 다양하니 비교가 필요합니다.
거창한 게 아니라, "내가 판단 못 하게 되면 누가 어떻게 내 돈을 관리할지"를 정신이 또렷할 때 한 번 정해두는 것입니다. 그 한 번이, 자식이 은행 창구에서 막막해지는 일을 막아줍니다.
정리하면
① 부모가 중증 치매면 자식이라도, 위임장이 있어도 통장이 막힙니다. ② 합법적 해결은 법원을 통한 후견뿐이고, 상태에 따라 성년·한정·특정후견으로 나뉩니다. ③ 신청은 주소지 가정법원에, 진단서로 감정을 대체하면 시간·비용이 절약됩니다(저는 약 4개월). ④ 가장 좋은 건 부모님 건강하실 때 임의후견·신탁으로 미리 대비하는 것입니다. 지금 부모님이 정정하시다면, 그게 바로 준비할 타이밍입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위한 것으로, 개별 사건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후견 유형·필요 서류·정신감정 여부·비용·소요 기간은 본인 상태와 관할 법원, 개별 사정에 따라 달라집니다. 실제 진행 전에는 대법원 전자소송(ecfs.scourt.go.kr)·찾기쉬운 생활법령정보(easylaw.go.kr)를 확인하거나, 가정법원·법률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금융 신탁 상품은 가입 전 조건을 충분히 비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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